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성 전투 (문단 편집) ===== 전투의 끝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rgekopgoprkrego.png|width=550]]}}} || || 금성남방 삼현지구 전투 경과요도 || 이 무렵, 제9연대 수색중대는 오전 2시 30분부터 약 3,000여발의 포탄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증강된 2개 중대 규모의 중공군이 출현하여 중대는 이들과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탄약부족으로 인해 결국 철수하게 되었으며 철수 후, 중대는 탄약을 보급받은 후 오전 7시에 다시 재공격을 가하였으나 중공군이 진지를 보강하고 규모도 1개 대대로 늘어난 터라 실패하고 518고지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처럼, 불리한 전세가 이어지자 제9연대장은 수색중대를 현장에서 철수시키고 제3대대의 일부병력으로 552고지를 탈환하라고 지시를 내렸으며 이에따라 대대장은 제9중대를 486고지 남단으로 보내여 오전 10시를 기해 공격을 개시하게 된다. 그런데 중대가 목표 전방 약 70m까지 접근했을때부터 중공군이 양측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집중사격을 퍼부었기에 중대의 돌격은 순식간에 돈좌되었으며 이에 중대장은 5명의 특공조를 급히 편성하여 중공군의 배후로 침투시키도록 하였고 특공대는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 배후로 잠입하여 이후, 중공군의 기관총 진지를 수류탄과 화염방사기로써 파괴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때 중대장은 중대 주력을 적진으로 돌격시켰고 중공군은 이들과 육박전을 벌이다 다음날 0시 50분쯤 552고지를 버리고 도주하여 552고지를 중대에게 내주고 만다. 이렇게, 602고지와 552고지 모두 탈취 성공한 사단은 예정대로 13연대 진지를 7월 20일 4시부로 제7사단 8연대에게 인계하도록 했는데 여기서 중공군이 이날 3시에 462고지 정면에 1개 대대를 투입하여 피아간의 교전이 전개됨에 따라 교대시간이 지연되었고 오전 6시 40분쯤에서야 제7사단 8연대에게 진지인계를 하였다. 이후, 그들은 [[425고지-406고지 전투]]를 치르게 되었으며 제11사단은 현 전선을 유지하도록 노력을 가하도록 했으나 7월 20일 오전 2시 50분쯤, 602고지에서 중공군 약 2개 대대가 출현해 602고지를 방어중이던 1,3대대가 중공군과의 백병전 끝에 무너져버렸고 제9연대의 552고지 또한 마찬가지로 대대규모로 출현한 중공군과의 교전으로 무너져 결국 602고지와 552고지를 상실하고 말았다. 이에 사단장은 예비대로 전환한 제13연대를 불러 552고지와 602고지를 탈환하라고 지시했고 제13연대는 제1대대를 602고지로, 제3대대를 552고지로 각각 공격목표를 배정하여 공격을 가해 이를 모두 탈환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된 중공군의 반격으로 인해 또 다시 밀려나고 만다. 이후에도 정전을 맞이할때까지 상호간 포격전이 계속되어 결국 602고지를 회복하지는 못한채 절반만을 확보하는 선에서 전투가 종료되었다. 제11사단 피해표 || 부대명 || 전사 || 부상 || 실종 || || 제13연대 || 186 || 386 || 90 || || 제9연대 || 98 || 479 || 67 || || 제20연대 || 83 || 495 || 29 || 제11사단 전과표 || 부대명 || 사살 || 추정살상 || 포로 || || 제13연대 || 725 || 1,426 || 18 || || 제9연대 || 913[* 추정살상+확인사살을 합한 값] || - || 9 || || 제20연대 || 140 || 687 || 2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